대한민국은 파시즘 사회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우리는 파시즘의 본질을 이해해야 합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알고 있는 “민족주의적 독재” 정도의 이해로는 부족해요.
2차 세계대전 이후 서양 지식인들의 가장 큰 과제는 “나치는 어떻게 탄생했을까?”였습니다. 한나 아렌트, 피터 드러커, 그리고 칼 포퍼가 이 문제를 깊이 파고들었죠.
그 중에서도 칼 포퍼는 가장 충격적인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전체주의는 서양 철학의 아버지 플라톤으로부터 시작된 2,500년 사상사의 필연적 결과다.”
플라톤의 이데아론: 완벽함의 독재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단순해 보입니다. 완벽한 원형이 존재하고, 현실은 그 불완전한 모방품이라는 것이죠.
하지만 여기에 헤라클레이토스의 “만물은 변한다”는 사상이 결합되면서 문제가 시작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데아(완벽함)에서 점점 멀어진다는 논리가 성립하거든요.
그렇다면 이 퇴화를 막을 수 있는 건 무엇일까? 플라톤의 답은 이성이었습니다.
이성이 충만한 철인왕이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 이들은 개인적 욕망을 버리고(결혼 금지) 국가가 양성해야 한다. 완벽한 엘리트 통치론이죠.
문제는 여기부터입니다. 누가 “이성적인 사람”인지 누가 정하나요? 그 기준은 누가 만들고, 그들이 틀렸다면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칼 포퍼는 바로 이 지점에서 전체주의가 시작됐다고 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 운명론의 탄생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의 사상을 뒤집었습니다. 불완전에서 완전으로 향하는 목적론적 진화론을 제시한 거죠.
이것이 더 위험했습니다. 역사가 정해진 목적을 향해 진보한다면, 모든 계급과 운명이 미리 결정되어 있다는 뜻이니까요.
영웅이 될 사람, 농민이 될 사람,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모두 정해져 있다. 이것이 바로 역사주의의 출발점입니다.
헤겔의 완성: 역사는 세계의 심판정
19세기 헤겔에 이르러 이 사상이 완성됩니다. 버트런드 러셀과 칼 포퍼가 똑같이 헤겔을 “어용지식인“이라고 비판한 이유가 있어요.
헤겔의 가장 위험한 명제: “역사는 세계의 심판정이다”
우리가 옳고 그름을 판단할 게 아니라, 역사가 알아서 심판해준다는 논리입니다. 승자가 곧 정의라는 거죠.
이 논리를 현실에 적용하면?
- 일제강점기: “일본이 이겼으니 일본이 우수한 민족”
- 나치 독일: “아리아인이 다른 민족을 지배하는 게 역사의 방향”
헤겔은 나폴레옹을 “시대정신”이라고 불렀지만, 결과는 시민사회가 아니었습니다. 이것이 칼 포퍼가 “닫힌 사회”라고 비판하는 이유예요.
민족주의와 영웅주의: 보이지 않는 독
칼 포퍼가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경고한 것들:
칼 포퍼에 따르면 이것들은 모두 같은 말입니다.
민족주의의 허상
“민족이 무엇인가?”
언어? 영토? 혈통? 칼 포퍼의 답은 명확합니다.
“정의할 수 없다.”
있지도 않은 개념으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것. 낭만주의의 산물이라는 거죠. 사람들이 기독교를 잃은 자리에 민족이라는 개념에 취해있다고 봤어요.
영웅주의의 유혹
한국 사회는 유독 영웅을 바라는 경향이 강합니다. 우파의 박정희, 좌파의 노무현. 평가를 떠나서 영웅을 기다리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게 포퍼의 관점이에요.
복잡한 문제를 한 사람이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순간, 비판적 사고는 정지됩니다.
전체주의는 암과 같다
한국 사회가 파시즘 사회까지는 아니지만, 전조 증상은 있어 보입니다.
전체주의는 암과 같아서 언제든 발현할 수 있고, 한 번 시작되면 급속도로 퍼져요. 히틀러도 총통이 되기 전까지는 지지율이 높지 않았지만, 몇 년 안에 확 올라갔거든요.
정치인들이 “민족”, “역사”, “운명” 같은 용어를 자주 사용하고, 이런 정치인들이 과도한 인기를 얻기 시작할 때가 위험한 시점입니다.
동양 사상의 지혜: 맹자의 혁명론
흥미롭게도 동양에서도 비슷한 고민이 있었습니다.
공자는 기존 계급 구조를 인정했지만, 맹자는 달랐어요. “왕이 군자가 되지 못하면 갈아치워야 한다”고 주장했죠.
성선설이지만 선을 개발시켜야 한다는 것. 고정된 계급을 거부하고 능력과 덕에 따른 사회를 추구한 거예요. 정도전이 맹자를 좋아한 이유이기도 하고요.
열린사회를 위한 조건들
칼 포퍼의 대안은 명확합니다:
- 비판적 합리주의: 모든 것을 의심하고 검증할 자유
- 점진적 개혁: 급진적 혁명보다 단계적 개선
- 다원주의: 다양한 의견과 가치관의 공존
- 개인주의: 집단보다 개인의 존엄성 우선
- 제도적 민주주의: 개인이 아닌 제도를 통한 견제와 균형
완벽한 유토피아는 위험하지만, 더 나은 사회는 만들 수 있다는 것이 포퍼의 믿음이었어요.
결론: 영원한 경계
전체주의는 가장 그럴듯한 논리로 포장되어 다가옵니다. “효율성을 위해서”, “조직을 위해서”, “미래를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말이죠.
하지만 선한 의도가 항상 선한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닙니다.
칼 포퍼가 꿈꾼 열린사회는 끊임없는 의심과 질문, 점진적 개선, 다양성에 대한 관용으로 만들어집니다.
완벽한 해답은 없지만, 더 나은 오늘은 가능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플라톤부터 헤겔까지 2,500년 사상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예요.
📹 더 깊이 알아보기: 칼 포퍼[열린사회와 그 적들], 전체주의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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