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3년, 거란의 침략과 서희의 등장🔍
993년(고려 성종 12년), 기록에 따르면 거란(요나라)의 성종은 총사령관 소손녕을 앞세워 8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략했습니다. 이 수치는 당시의 과장된 기록일 수 있으나, 어쨌든 고려가 직면한 위협의 규모가 압도적이었음은 분명합니다.
이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고려 조정은 극단적인 두 의견으로 나뉘었습니다:
- 서경(평양) 이북 지역을 모두 거란에 넘겨주자는 의견
- 국왕이 직접 나가 항복하며 사죄하자는 의견
이때 나타난 인물이 바로 서희입니다. 문장가이자 외교관, 정치가였던 서희는 당시 병부상서(국방부 장관)의 직책에 있었으며, 문무를 겸비한 인재로 평가받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두 번의 실패한 협상 후에 자신이 직접 거란 진영으로 들어가 소손녕과 담판을 짓겠다고 나섰습니다.
서희가 파악한 동아시아 정세와 손자병법의 구지(衢地) 전략 📊
서희의 뛰어난 점은 당시 동아시아의 국제정세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가 분석한 당시 상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 거란(요)과 송나라의 첨예한 대립: 거란은 연운 16주(지금의 베이징 주변 지역)를 놓고 송나라와 치열한 대립 관계에 있었으며, 이 지역의 통제권이 양국 간 핵심 분쟁 사안이었습니다.
- 고려의 전략적 위치: 고려는 거란이 송나라를 공격할 때 후방에 위치한 ‘구지(衢地)’였습니다. 손자병법에서는 구지를 “세 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어, 먼저 이르는 쪽이 천하의 백성을 얻을 수 있는 곳”으로 정의하며, 이런 곳에서는 “외교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 압록강 너머 지역의 모호한 통치권: 강동 6주(흥화진, 용주, 통주, 철주, 귀주, 곽주) 지역은 거란, 고려, 여진족이 모두 완전히 통치하지 못한 “회색지대”였으며, 이 지역에는 발해 유민들도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 거란의 실질적 목표: 서희는 거란의 진짜 목표가 고려 정복이 아니라, 송나라와의 전면전을 위한 후방 안정화임을 간파했습니다.
서희의 외교술: 4단계 협상 전략으로 승리하다🧠
1단계: 심리적 우위 확보
소손녕이 “왜 송나라와만 친하게 지내고 우리와는 교류하지 않느냐”고 책망하자, 서희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우리도 거란과 수교하고 싶었지만, 여진족이 중간에 있어 사신이 오가기 위험했습니다. 육로로 가는 것이 바다를 건너는 것보다 더 편하지 않겠습니까?”
이 대답은 소손녕의 비난을 방어하는 동시에, 문제의 원인을 여진족으로 돌리는 교묘한 전략이었습니다.
2단계: 공통 이익 제시
서희는 여진족 문제를 언급함으로써 거란과 고려의 공통 이익을 찾아냈습니다. 강동 6주 지역은 여진족이 많이 살고 있었고, 이들은 거란에게도 골칫거리였습니다. 또한 이 지역에는 거란에 의해 멸망한 발해의 유민들도 있었기에, 거란 입장에서는 이 지역을 직접 통치하는 것이 부담스러웠습니다.
3단계: 시간 요소 활용
서희는 시간이 거란에게 불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거란군은 10월에 침입했고,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고려는 청야전술(모든 식량과 자원을 없애는 전술)을 사용했기에, 거란군은 식량 보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손자병법에서는 “중지(적 영토 깊숙이 들어간 곳)에서는 식량 조달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비지(험준한 지형)에서는 빠르게 벗어나라”고 조언합니다.
4단계: 명분과 체면을 동시에 제공
서희는 거란의 요구(고려가 거란의 연호 사용)를 수용하면서도, 실질적인 이익(강동 6주 영토 획득)을 얻어내는 절충안을 제시했습니다. 이는 거란에게 외교적 체면을 세워주는 동시에, 고려에게는 영토 확장이라는 실질적 이익을 가져다주는 해결책이었습니다.
고려-거란 협상의 결과: 영토 확장의 기적🏆
서희의 전략적 협상은 다음과 같은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1. 강동 6주 획득: 고려는 압록강 이남의 6개 성(홍화진, 용주, 통주, 철주, 귀주, 곽주)을 영토로 편입했습니다. 이 지역은 고구려의 옛 영토로, 고려의 북방 방어에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2. 거란군 철수: 기록상 80만 대군이 침략을 중단하고 철수했습니다.
3. 풍성한 선물: 고려 사신단은 소손녕으로부터 낙타 10마리, 말 100필, 양 1000마리, 비단 500필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이는 당시 외교 관계에서 매우 이례적인 후한 대접이었습니다.
4. 이중 외교의 성공: 더욱 놀라운 것은 거란과의 협상 후에도 고려는 송나라와의 관계를 유지했다는 점입니다. 거란의 연호(통화)를 사용하면서도, 송나라와의 무역에서는 면세 혜택까지 받는 이중 외교의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송나라의 문인 소동파가 “고려인들은 거란의 앞잡이인 원숭이들”이라며 비난했던 이유입니다.
서희 외교술의 현대적 교훈: 강대국 사이 약소국의 생존 전략💭
서희의 외교는 약소국이 강대국 사이에서 생존하고 번영하는 방법에 대한 탁월한 사례를 제공합니다. 그의 전략은 오늘날 국제관계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1. 국제정세의 정확한 이해: 서희는 거란과 송나라의 관계, 여진족의 위치, 발해 유민의 존재 등 복잡한 국제정세를 정확히 파악했습니다. 오늘날 한국이 미국-중국-러시아-일본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상황과 유사합니다.
2. 약소국의 지렛대 찾기: 서희는 여진족 문제와 시간적 압박이라는 지렛대를 활용했습니다. 이는 현대 외교에서 작은 국가들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협상 카드를 찾는 것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3. 유연한 실용주의: 서희는 이념보다 실리를, 전쟁보다 외교를 선택했습니다. 이는 2018년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이나, 우크라이나-러시아 분쟁에서의 외교적 노력들에서도 볼 수 있는 접근법입니다.
4. 이중 외교의 가치: 고려는 거란과 송나라 사이에서 양측 모두와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이는 오늘날 많은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들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취하고 있는 전략과 유사합니다.
결론: 새로운 세계 질서 속 한국의 전략적 선택
현대 한국의 상황을 보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의 균형 외교, 북한과의 관계 개선 노력, 일본과의 역사 문제 해결 등에서 서희의 실용적 외교 접근법이 여전히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약소국이지만 강대국들 사이에서 생존하고 번영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원칙보다 실리를, 이상보다 현실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있음을 서희의 사례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강대국 사이에서의 전략적 균형은 이념적 논쟁이 아닌 국가 생존의 문제다.”
참고 문헌
- 고려사(高麗史) – 서희전
- 손자병법(孫子兵法) – 구지편
- 송사(宋史) – 외국열전, 고려전
- 허명구, “서희의 거란 외교와 강동 6주 획득의 재평가”, 한국사연구, 2018
📹 더 깊이 알아보기: 거란은 왜 군대를 물리고 서희에게 강동6주를 주었을까?
지금까지 서희의 4단계 협상 전략과 80만 대군을 물리친 고려 외교의 승리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글로만 접한 서희의 뛰어난 외교술을 영상으로 더 생생하게 확인해보세요. 천 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한 외교적 지혜와 전략적 사고를 얘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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